프롤로그 SLOW TIME

안녕? 실제로 보는 건 두 번째지만, 자기소개는 한 적이 없느니 지금부터 나의 소개를 할게.

 

내 이름은 이이황이라고 해. 17살 파릇파릇한 여고생이야. 이름이 약간 이상하다구? 음... 이름에 대해선 이야기 하기 싫은데 정 궁금하면 이야기 해 줄게. 이황이란 조선시대에 매우 뛰어난 학자인데, 영남학파를 이루었고, 이이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기호학파와 대립, 동서 당쟁과도 관련되었다고 해.

 

일본 유학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다, 도산서원을 설립,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힘쓴 사람이야.

 

뭐? 네이버 백과사전하고 똑같은 설명?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잖아. 여자가 말하고 있는데 중간에 끼어들다니, 매너가 없는 녀석이네.

 

아무튼! 이 이황이란 사람을 우리 할아버지가 매우 좋아하셨나봐. 자신의 손녀에게 이황이란 이름을 붙이고 싶을 정도로. 원래라면 아들에게 붙일 이름이었는데, 딸이 태어나는 바람에 매우 실망하셨다나? 딸이 태어났을 때의 이름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지, 한동안 난 이름도 없는 상태였어.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야지, 출생신고도 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름이 없을 순 없잖아? 그래서 아버지가 출생신고하러 갔을 때 이름이라 적힌 곳 옆의 빈 공간을 한참 쳐다보다가 아들에게 붙여야 했을 이름을 적어버린거지. 참 재미없지?

듣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지도 몰라. 사실 우리 할아버지의 동생은 이이 선생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손자의 이름을 이이라고 지어버렸는데, 그 덕에 그녀석 이름은 이이이가 되어버렸어. 이름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생해서 그런지 이름을 바꿔버리겠다고
하는데, 할아버지의 동생분이 허락해 줄 리가 없잖아? 한번씩 만나면 문문문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도 있는데 넌 그것보단 괜찮지 않느냐고 위로를 하곤 해. 그럴 때마다 얼굴이 조금씩 썩어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건 역시 기분 탓 일테지.

 

응? 이름에 대해서 너무 이야기 해 버렸네. 자기 소개는 이정도로 할게. 그나저나 나에게 쓸데없는 말을 이렇게 많이 하게 하다니, 부처님이 살아 돌아오신다 해도 용서하지 않을 정도지만 넘어가 줄게. 지금은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응, 그렇네. 세상엔 진짜 중요한 일따윈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 예를 들면 지금 여기서 지진이 나서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이 수백명씩 죽는다 하더라도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선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정도지 않겠어? 보나마나 뉴스에 나오지 않게 되는 시점에서 모두 잊어버릴거야. 중요한 일이 아닌거지. 실제로 지금도 5초에 3명씩 죽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사실이 우리에게 중요해?

 

중요하지 않지? 응? 왜 사람이 죽는 일에만 한정하고 있냐고? 사람이 죽는 일보다 중요성이 높은 일따윈 어디에도 없으니까지.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도 있지 않냐구?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멸망하는 일이야. 세계가 멸망하는데 돈이나 명예나 권력을 따지고 들려는 사람이 있다면 죽여버려야지. 바보는 죽어야 낳는다고 하니깐.

 

이야기가 자꾸 새어 버리네. 그래. 중요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도중이었지. 맞아. 나에게 일어난 일은 어딜 봐도 중요한 일이 아니야. 그래, 어른들이 술마시며 내 뱉는 술주정과 비슷할 정도의 의미밖에 없는 일이야. 그 일로 인해서 내가 죽거나 하지도 않고 실제로 죽는다 하더라도 그건 너에겐 중요하지 않은 일에 불과하니까. 그래서 중요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뿐이야.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도 중요한 이야기만 하진 않잖아? 듣고 그날 바로 잊어버리는 정도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잖아.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오늘 바로 잊어버려도 좋을 정도의 이야기야. 그러니까 지금 말할게.

 

나의 눈에서, 귀에서, 코에서, 입에서, 피부에서, 전신에서 느껴지는 이 한없이 느린 시간을 만든 사람에 대해서 말이야.




오늘부터 시작한다~~~~~

덧글

  • 히무라 2010/04/18 09:15 # 답글

    1인칭 시점이군, 일단 주위상황을 알리는덴 좋았달까-
    다만 인터넷인 관계로 중간중간에 보기 편하게 한줄씩은 띄워주는 게 좋을듯-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