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호랑이가 도시에 나타났다고 해.”
현주가 말했다.
“호랑이?”
“음... 호랑이라고 해야 하려나? 요즘 살인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시체들이 마치 거대한 ‘육식동물에게 씹어 먹힌 모습
이었다’ 라는 거지.”
“하지만 그것만으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어?”
“‘사람의 모습’을 한 호랑이.”
“사람의 모습?”
“응, 그렇게 생각해. 그게, 사람의 몸을 하고 있는데 다리부분이 호랑이었다고 하더라고.”
“그건 꽤나 엽기적인데. 사람 시체에다 호랑이 다리를 붙여버린 것 아냐?”
“그게, 아버지가 말하기를 마치 사람의 몸에서 호랑이의 다리가 자라난 모습이었데.”
“쑥과 마늘을 먹다 만 호랑이의 모습이겠네, 그건.”
“농담이 아니라니까.”
내가 농담을 말하자 바로 정색한다. 이 녀석의 이름은 최현주. 허리 근처까지 내려오는 약간 지저분한 머리카락이 매력
포인트인 친구다. 언제나 자고 일어난 듯 한 머리에 축 늘어진 눈을 하고 있어서 선생님들에게 이상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착실한 성격이다.
현주의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근무한다고 하는데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가는 모른다. 단지 이런저런 사건을 현주에게
이야기해주는 모습을 보면 분명히 사건에 휘말리기 쉬운 위치에 있겠거니 하고 예상할 수 있다. 옛날에 현주 집에 놀러갈
때마다 그 엄청난 근육과 팔에 길게 그어있는 칼자국이 눈에 띄었는데,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현주는 그런 아버지 때문인지 이상한 사건이나 범죄에 관심이 많다. 엽기 범죄 사건이나 사고 등등, 결코 좋지 않은
부분에만 신경을 곤두세운다. 딸에게 빈말로도 좋다고 말하기 힘든 일들을 떠벌리고 다니다니, 그 아저씨도 상당히
문제지만 내가 그걸 직접 말할 생각은 없다. 무서우니까.
사건에 관심이 많은 만큼 자신이 직접 그런 현장을 찾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진짜 위험한
일에는 뛰어들지 않는 모양이라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찌릿!
“화, 확실히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는 호랑이가 있다면 그건 진짜 방법이 없겠네.”
도끼눈을 뜨며 노려보는 현주에게 내가 말했다.
“요즘엔 실종되는 사람도 많으니까, 진짜로 잡아먹히고 있을지도, 인간.”
현주는 고개를 반쯤 숙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둔갑한 호랑이에게 사람이 잡아먹히고 있다면 그건 큰일일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그런데 말이야 현주야.”
“응?”
“내가 빌려준 숙제, 전부 적었어?”
“어?”
그때서야 생각난 듯이 현주는 책상 위를 쳐다보았다. 책상 위에는 2개의 공책이 있다. 하나는 글자로 빼곡히 뒤덮여 있었던
것에 반해 다른 하나는 하얀 바탕에 27개의 검은 줄만 쓸쓸히 남겨져 있는 모습이 매우 대조적이다.
‘딩~동~댕~’
수업이 시작되는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왜 지금 말하는 거야!”
아무리 그렇게 말한들,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네, 친구. 그보다 네가 먼저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잖아.
현주는 자신의 공책과 나의 공책을 번갈아 보며 안절부절 하더니 결국 책상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번 시간은 국어.
국어선생은 숙제도 많이 내주는데다 만약 하지 않은 경우엔 2배로 되돌려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주는 저번시간에도
안했었으니까 이번엔 4배가 되려나?
명복을 빌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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