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호랑이

오늘은 여기까지

소녀의 이름은 린이라고 했다. 성이 뭐냐고 물어봤지만 성이 뭔지를 모르는 눈치였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그 뒤로 어떻게 되었냐 하면 그녀를 우리 집에 데려오게 되었다. 가만히 놔뒀다간 이상한 사람을 멋대로 따라갈 눈치였고
 
내가 고기를 먹여줄 거라고 기대하는 눈빛이라 버리고 갈 수 없었다. 이렇게 수상한 녀석은 경찰서로 보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역시 그렇게 하기엔 좀 그렇지. 알몸에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고 말이야.


현재, 린은 우리 집에서 불고기를 열심히 집어먹고 있다.


“이, 이것은! 저를 위해서 미리 준비한 겁니까?!”


아니, 너를 위해서 준비한 적 없어. 저거 분명 이번 주말에 가족 끼리 같이 먹으려고 사둔 거였는데. 난 채식 주의자니까 제외.


집에 들어갔을 때 내 뒤로 따라온 린을 보고 여동생이 범죄의 향기라도 맡은 모양인지 “저번엔 도둑고양이를 데려오더니
 
이젠 호랑이를 데리고 왔구나!” 하면서 나의 옆구리에 호쾌한 드롭킥을 날렸다. 그녀가 린이 호랑이 가죽 밑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모습을 보고 현관에서 괴로움에 뒹구는 나에게 새우 꺾기라는 신기술을 선보였고, 난 사정을 다 설명하고 나서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용 기술 목록이 더 늘어났군.


지금 여동생은 마치 영춘권이라도 사용하는 듯 손을 놀리는 린의 얼굴을 귀엽다는 듯 쳐다보고 있다.


여동생의 이름은 이신하. (나와 성이 다른 이유는 내가 이 집의 양자이기 때문이지만 사소한 일은 넘어가자)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여고생이다. 키 170cm, 단발머리에 샤기컷을 넣어 왠지 어느 대기업의 비서 같은 느낌을 주는
 
여동생은 이걸 본인에게 말하면 나이 들어 보여서 놀리는 거냐고 화를 내곤 한다. 나와 같이 다니면 주위 사람들에게
 
누나취급을 당할 경우도 많아서 더욱 화를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깥에서도 그렇지만 집안에서도 이 녀석의 흐트러진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집안에선 단색 계열의 원피스 같은 것을 입고

(별로 어울리진 않는다) 밖에 나갈 땐 교복이나 정장에 가까운 옷을 입는다. 도저히 여고생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감성이다.

 이 나이 쯤 되는 여자들은 대부분 꾸미기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언젠가 본인에게 물었더니 “안 어울려......”라고 하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대체 무엇이 안 어울렸다는 것일까. 가끔 같이 쇼핑을 나갈 때면 옷가게 앞에 멈춰 서서 어떤 뚫어져라
 
쳐다보곤 이윽고 한숨을 내 쉬는 장면을 목격하곤 하는데, 분홍색이 많이 들어간 왠지 귀여운 느낌의 옷 앞에서 자주 그러는 걸
 
보면 여자 아이의 마음은 복잡한 듯하다.


“왜 남의 얼굴을 보며 실실 웃어?”


아무래도 내가 웃고 있었나 보다.


“아니, 그냥.”


여기서 “귀여워서” 라고 말했다간 또다시 킥이 날아오겠지. 쑥스러움 0.1%와 분노 99.9%를 섞어서.


“근데 오빠는 이것도 그렇고 이 아이도 그렇고 어디서 자꾸 주워오는 거야?”


여동생이 발로 마침 식탁 밑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자(검은고양이 수컷)를 말로 툭툭 건드린다. 사자는 앞발로 자신을
 
건드리는 괴물체를 공격해 보지만 이윽고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자신의 집(내 방)으로 도망간다.


“이것이라니, 듣기 나쁘네. 엄연히 사자란 이름이 있는데.”


“내가 아는 사자는 동물원하고 아프리카에만 있어.”


“사자란 이름은 네가 붙인 거잖아.”


“난 그때 단지 사자가 보고 싶었을 뿐. 고양이에게 사자란 이름을 붙이다니, 오빤 너무 엽기적이야.”


“분명히 사자라고 말하기 전엔 슈뢰딩거라고 말하지 않았었냐, 너.”


“난 기억에 없는데.”


“난 기억한다고!”


“불쌍하게도 기억의 혼란이 생겨버렸네. 걱정 마. 만약 오빠가 벽에 X칠을 하게 되더라도 난 못 본 척 할 태니까.”


“그건 고맙... 지 않아! 나 절대로 버릴 거지!”


“그런데 오빠. 기억이란 건 정말로 연약한 것 같지 않아?”


갑자기 주제를 돌려버리는 군, 이 녀석.


“왜?”


“만약 내가 고양이 이름을 슈뢰딩거라고 지으려 했던 사실이 있었을 때 그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그 당시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밖에 증거가 없잖아?”


“만약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지만, 뭐 그렇지.”


“녹음이나 증거를 만들지 않으면 사실은 애매모호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야.”


“그래서?”


“사람의 기억만큼 믿기 힘든 것도 없으니까 오빠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도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는 소리.”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난 그런 적 없다고.”


“.......”


궤변을 늘어놓는 여동생이었다. 옛날에 그 귀여웠던 동생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어버렸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탠데.


“그래서.”


여동생이 고개를 나에게서 다시 린에게로 돌린다.


“이 아이는 어떻게 할 셈이야?”


린은 우리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고 열심히 고기를 자신의 위장으로 이사시키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옛날
 
여동생이 인터넷에서 샀다가 두 번을 못 입었던 짧은 청바지와 노란 배꼽티를 입고 있었다. 여동생이 입은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잘 모르겠지만 지금 린에겐 보통 반바지와 티셔츠로 보인다. 그나저나 왜 산거야? 저거.


그녀가 끌고 다니던 호랑이 가죽(?)은 지금 베란다에 널려 있다. 도시의 땅바닥을 열심히 쓸고 다녔을 그것은 도시의 냄새를
 
여과 없이 그대로 흡수하는 바람에 페브O즈 한통을 전부 사용한 뒤 건조중이다.


“어떻게 한다고 해도... 일단 오늘은 여기에 재우고 내일 같이 나가보려고. 뭔가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그래? 그렇다면 크게 신경은 쓰지 않겠지만... 그래도 경찰에 맡기는 게 아무래도 좋지 않아?”


“아니, 경찰은 좀......”


“하긴, 그랬다간 오빠가 경찰에 잡혀 들어갈 것 같으니까.”


“어째서?!”


“척 봐도 범죄의 향기가 나잖아, 오빠는.”


“나의 어딜 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냐?”


“아, 미안. 사실이라도 해선 안 될 말이 있었지. 내가 생각이 짧았네. 거기다 얼굴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내 얼굴이 이상하다는 듯이 이야기하지 마! 마치 사실 같잖아!”


적어도 우리나라 보통은 된다고 생각한다!


“오빠, 오빠는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의 얼굴이란 건 매우 높은 수준을 이야기 하는 거라고? 실제로 보통정도의
 
얼굴을 가진 사람은 연예인 수준이란 이야기지.”


“그래, 난 보통 이하다!”


인정해 버리고 말았다.


“시시한 오빠의 얼굴 이야기는 됐으니까, 저 애나 잘 봐줘. 난 잘 테니까. 아 그러고 보니 오빤 오늘 거실에서 자지?”


“왜 내가 거실에서 자야 되는데?”


“그럼 저 아이를 거실에서 재울 생각이야? 거실은 보일러가 안 들어가던데 이런 곳에 여자 아이를 재우려고 하다니,

 과연 우리 오빠야. 어차피 유치원 근처에서 매일 어린 아이들을 괴롭히며 즐기고 있지?”


“내가 거실에서 잘게.”


내가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들고 나오자 여동생이 다시 비난하듯이 말했다.


“오빠, 그거 겨울 이불 아냐?”


“어, 그런데?”


“오빠는 저런 어린 아이에게 여름 이불이나 덮고 자란거야? 이 추운 날에?”


“아니, 내 방에는 보일러가 있다고. 거기다 전기장판도 있는데.”


“남자의 꼴사나운 변명은 듣기 싫어.”


나, 이런 소릴 들을 만큼 잘못한 것일까.


결국 난 다시 방에서 여름 이불을 들고 와서 바닥에 깔았다. 여동생님의 선처로 그녀가 쓰던 여름 이불을 얻어와 두 겹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왜 이렇게 얇은 거야 이 이불! 조금 더 두꺼워도 상관없잖아! 내일 부모님이 일어나시면 이불을
 
좀 더 다양하게 구비할 필요가 있겠다고 건의 드리는 게 좋겠다.


“저기 오빠, 고기 다 먹었는데 혹시 다른 건 없어?”


린이 어느새 고기를 다 먹고 나에게 새로운 고기를 요구해 왔다. 미안하지만 지금 있는 고기가 마지막이야. 거기다 난 내일

네가 먹은 고기를 다시 사 넣어 둬야 한다고. 그리고 금방 사용한 불판도 설거지해야 하고, 그리고....... 그러니까.......


“넌 이제 자.”


덧글

댓글 입력 영역